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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영화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

2018 1 17일 수요일



공항에 도착하고 오랜만에 국적기를 타기위해 아시아나 셀프체크인을 사용하려는데 F-1비자를 받으면 창구에가서 직접 해야한다고 한다. 매번 저가항공을 이용하다가 국적기를 이용하는데 탑승 과정이 편하거나 그런 점은 없었다. 면세점을 구경할 시간이 없어 공차에서 윈터멜론 밀크티를 마시고 탑승까지 기다렸다. 거의 뒷자리에 앉게 되었고 창가 옆이었다. 기내에 제공되는 영화 목록을 보니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이 여럿 있었다. 러빙 빈센트, 군함도, 박열, 플립,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 . 시작은 러빙 빈센트,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이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점저 사영관수가 많아 졌다 한다. 영화는 CG 사용하지 않고 100명의 화가들이 수작업으로 유화를 그려내 무려 6 6969장의 장면 장면들을 직접 그려내 프레임으로 만든 ㅇ니메이션이다. 고도의 CG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빈센트 고후의 대표작 954점을 수작업으로 재구성한 이유에 대해 영화는 '그림 말고는 우리를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기내 잡지에 기재된 칼럼을 적고자 한다. " 컴퓨터 그래픽이 실제보다 실제 같은 화면을 구현하는 최첨단 시대에 굳이 감독은 여러 사람의 손발을 고생시켜가며 움직임도 어색한 유화 애니메이션을 택했을까? 대목에서 <러빙 빈센트> 인상주의 미술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투시도법을 이용한 원근법이 '발명되다시피 발견'되면서 화가들이 평평한 2차원의 그림에 깊이감있는 3차원 표현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누가 봐도 어색하지 않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그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이미 터득한 원근법을 깡그리 무시한 납작하고 어색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치 CG 더욱 세련된 화면을 연출할 있음에도 번거로운 그림으로 여오하를 만들 . 인상파 화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이 정확함이 아니라 눈이 감지한 인상이었고 표현의 객관성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었다. 인상주의 미술은 '느끼는 사람' 중시했고, 이영화는 화면 뒤에서 '수고한 사람' 깨닫게 한다. CG 배제하고 수작업 유화를 택했기에 관객은 우리 시대가 놓치고 사는 손맛의 차지고 성실한 묘미를 비로소 알게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기울여고 되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삶을 찾아가는 열정에 대한 그리움은 덤이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의 주위에 잠시 혹은 나름 대로의 일생의 부분을 머물던 자들이 망자를 논하고 있다. 고흐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그에게는 빛을 보지 못하고 뱃속에서 사망한 형이 하나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첫째를 잊지 못하며 둘째이자 장남인 고흐에게 소홀히 한다. 아버지마저 그에게 냉대하여 그는 그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종교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지만 결국 종교직을 떠나게 되고 28살에 생에 붓을 잡게 된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정하며 나머지 시간에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는 정신의학과 의사 가셰 밑에서 치료를 받고 허름한 여인숙에서 생활한다. 그는 밀밭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친구 고갱과 싸우던 자신의 귀를 잘라 여자에게 선물을 보내는 미친 짓을 후로 그는 동네 아이들에게마저 미친광이로 낙인찍혀 돌을 맞게 된다. 외로움이 사무친 미치광이 화가는 밀밭에서 자신에 배에 총을 자살을 시도하고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긴 고인이 된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머리가 아닌 배에 총을 쏘고 피를 쏟으며 거리를 걸어 여인숙으로 돌아오고 책임을 묻지 말하달라고 말했다는 정황은 미심쩍은 의구심마저 남겨 주다.

고흐의 친구의 아들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 이유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되어 생전 고흐의 주변인이었던 가셰 의사, 그의 딸과 가정부, 여인숙 주인과 그의 , 고흐를 못살게 굴던 르네라는 친구, 타살을 주장하는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며 소문을 전해듣고 전하고 동조하고 반박하고 의심하고 진실을 갈구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 자에게 죽은 자를 물을 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워낙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관계를 살피지 않고 맥락을 읽지 않기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을 지라도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너무나 다르다. 그들에게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고 이후 그들은 고작 찰나의 시간을 목격할 지라도 이미 내린 결론으로 귀결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노력에는 각자의 결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더불어 한없이 가벼워 쉬이 웁직이는 혀놀임이 빠질 없다. 의심, 가책, 반론, 고백, 소문, 증인, 분노, 허망함으로 얽히고 얽힌 고흐의 죽음은 결국 없는 실타래가 되어 그가 남기고자 진심의 본질마저 가려져 간다. 이상의 몸부림은 헛발짓에 지나지 않아 고개를 숙일   밖에 없다 별빛이 무성한 밤하늘 아래에서 조차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지금도 여전히 타살인지 자살인지 조차 명확히 없지만 그의 별들은 변함없이 우리를 비추어 준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며 잔잔히 귓가를 울리는 starry starry night. 볼륨을 높여 그녀의 낮지만 묵직한 울림에 집중을 해본다 

Lianne La Havas - Starry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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